인도주의 관점에서 남북이 한 발씩 물러설 때
'금강산 시설 몰수 조치'에 발 묶인 이산가족 상봉행사
2010년 09월 30일 (목) 20:08:40 정명진 기자 mjjung@tongilnews.com
추석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위해 10월 1일 남북이 또다시 머리를 맞댄다. 그러나 남북이 각자의 정치 셈법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바라보고 있어 합의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지난 17일, 24일 두 차례 적십자 실무접촉을 진행하면서 남북의 의견차는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합의하지 못한 책임 공방전과 기싸움까지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남북 책임공방... 서로 다른 주장

남북은 회담이 끝나자마자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합의하지 못한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기에 바빴다.

지난 25일 북측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애당초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위한 실무접촉에 마지못해 나온 남측은 첫 시작부터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면서 쌍방이 전번 접촉에서 합의한 상봉 날짜와 명단교환 날짜 등을 모두 뒤집으며 늦잡자고 했다"고 주장했다.

또 "우리측이 남측의 제안을 대범하게 받아들여 상봉장소를 금강산면회소로 할데 대한 문제를 쌍방 관계자들 사이에서 협의하자고 하자 남측은 황급히 면회소주장을 철회하면서 상봉장소를 다른 곳으로 하자고 하는 등으로 문제토의에 계속 인위적인 난관을 조성하였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한 남측의 주장은 다르다. 첫 번째 접촉에서 상봉날짜(10.21-27)는 '합의'한 것이 아니라 '의견접근'을 이룬 것뿐이며 행사 합의가 늦어진 만큼 준비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해당 날짜에 행사를 치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첫 번째 접촉을 마치고 귀환한 김의도 남측 수석대표는 도라산 출입사무소에서 "상봉날짜를 합의했다"고 밝혀, 정부 내에서도 서로 말을 맞추지 못했다. 이는 상봉장소 해결 전에 행사에 합의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전략에 따라 '합의'를 '의견접근'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남측이 황급히 상봉장소를 다른 곳으로 제안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북측이 금강산 이산면회소에서 행사가 불가능하다고 고집해서 다른 곳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도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치른다면 금강산 면회소에서 열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북측은 금강산 지구 내의 모든 시설이 몰수.동결되었다면서 구체적인 상봉 장소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강산 몰수.동결 조치에 대한 서로 다른 셈법

이산가족 상봉행사 합의에 최대 걸림돌은 금강산 관광 지구 내 상봉행사 장소를 결정하는 문제다. 이는 지난 4월 북한이 취한 금강산 관광 지구 내 남측 시설에 대한 동결.몰수 조치와 연결되어 있다. 이 조치가 해결되어야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금강산 시설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 모두 금강산 시설에 대한 동결.몰수 조치가 풀리기를 원한다. 하지만 서로가 생각하는 목적이 다르다. 북측은 동결.몰수 조치는 금강산 관광 중단에 따라 취한 조치이기 때문에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어야 이 조치를 해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남측은 북측이 일방적으로 취한 조치이기 때문에 금강산 관광 재개와 상관없이 이 조치를 스스로 풀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세부적인 입장을 바라보면 남북의 정치적 셈법은 더욱 복잡해진다. 북측은 일단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대한 합의서를 채택하고 나서, 구체적인 장소 사용 문제는 별도의 당국 간 접촉을 통해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남측은 상봉장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합의서를 채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장소 문제를 남겨놓고 이산가족 상봉행사부터 합의해 버리면,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로 끌고 가려는 북측의 의도에 말릴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같이 밀고 당기는 싸움 속에서 남측은 '이산가족 상봉을 안 해도 된다'며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5일 "북한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이산가족 상봉의 전제조건으로 끝까지 걸고 나온다면 이산 상봉행사를 안 해도 좋다는 게 정부입장"이라고 말했다.

'금강산 관광 관련 추후 협의' 수준에서 상봉행사 합의해야

북한은 사실상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전제조건으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요구하고 있고, 남측은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금강산 시설에 대한 동결.몰수 조치를 무력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셈법에 따라 남북이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동안 고통 받는 이들은 남과 북에 갈라져 살고 있는 이산가족들이다. 이번에는 만날 수 있을까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고 밤잠을 설칠 이산가족에게 이러한 정치적 셈법은 너무나 가혹하다.

10월 1일 추가 접촉에서 남북이 상봉행사를 합의하지 못하면 추석계기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더 이상 공방전과 기싸움을 벌이기에는 시간이 없다. 남북은 정치적 셈법이 아닌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한 발짝씩 물러서야 할 때다.

북측은 금강산 관광재개를 당장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한해서라도 동결.해제 조치를 잠정적으로 풀어야 한다.

남측도 관광객 피격사건과 천안함 사건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면서 북한의 입장변화가 없는 한 금강산 관광 관련 회담도 열 필요도 없다는 경직된 태도에서 벗어나, 추후 금강산 관광에 대해 계속 협의하는데 유연한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남측이 요구하는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위해서라도 결국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논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산가족이라는 인도주의적 문제가 남북 간 복잡한 정치적 셈법을 풀어나가는 열쇠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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