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만큼은 정말 살렸으면..." | |||||||||||||||||||||||||||||||||||||||||||||||||||||||||||||||||
<르포>'무건리훈련장 확장', 철거 위기에 놓인 '직전초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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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무건리훈련장' 확장예정지역인 파주 법원읍 오현리 마을에 도착했을 무렵, 마을 초입에 위치한 제6878부대의 혹한기 훈련이 한창 진행 중이다. '탱크소리만 들리는가? 주민들이 울고 있다'라고 쓰인 현수막에 아랑곳 하지 않고 군용차량들은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여전히 주민들은 '고향땅을 떠날 수 없다'며 버티고 있지만, 군인들에게 이미 오현리 마을 전체가 그들의 훈련장이었다. 곳곳에 매복해 있는 군인들, 마을을 옆에 끼고 이어진 도로 위를 달리는 군용트럭들의 모습에서 '훈련장'과 '마을'을 구분할 수 없었다. '무건리훈련장'은 한미공동훈련장이다. 한국군 1군단 소속이지만, 주한미군이 연 13주 정도를 사용하고 있다. 2002년 '미선이, 효순이' 두 여중생의 목숨을 앗아간 미군전차도 이곳에서 훈련에 참가했다가 마을 근처에서 그 끔찍한 사고를 냈었다.
조용히 진행되던 확장사업이 올해 들어 속도를 내고 있다. 2008년도 무건리 훈련장 확장을 위한 토지매입 예산은 960억원으로 전년도보다 3배 이상 늘어났다. 특히, 마을주민들의 생활중심지인 '구' 직천초등학교가 허물어질 위기에 처해있다. 폐교가 된 직전초등학교 건물에서 10년 가까이 운영돼 왔던 '도자기 나라'의 연장계약이 작년 말 일방적으로 취소됐고, 올 상반기 안에 학교건물을 철거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주민들 사이에 나돌고 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 싸움'을 벌이던 주민들의 근거지였다가 국방부에 의해 무너졌던 평택의 '대추분교'가 떠올려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군사훈련 속의 평화, '도자기나라'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을 만지작거리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은, 군인들과 군용차량이 즐비한 바깥 풍경과 사뭇 달랐다. 고사리 손으로 토끼며, 호랑이 모양을 빚는 아이들은 얼굴은 진지하면서도 신난 표정이다. 짝꿍이 빚은 얼굴 모양을 보며 까르르 소리 내 웃기도 한다. 인천 서곶초등학교 노예진(9) 양은 작년에 이어 이번에 또 왔다며 흙으로 직접 만드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면서 "고구마도 구워 먹고, 집에 가면 기억도 나고 또 오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 도자기나라'는 연간 3만명의 아이들이 찾을 만큼 인기가 좋다. 곽금옥 '한샘어린이집' 원장은 4년째 매년마다 이곳을 찾아오고 있다며 "시골 분위기도 살아 있고 경관도 좋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라며 흡족해 했다. "겨우 좋은 곳을 찾았는데 이런 곳을 없애면... 아이고! 참." 군사훈련장 확장으로 이곳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말을 전하자, 놀란 듯 허탈해했다. 곽 원장은 "다른 어린이집이나, 학원에서도 여기 많이 온다. 여기만큼은 정말 살렸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주병준 '무건리훈련장백지화주민대책위' 위원장은 "국방부 쪽에서 대추분교 때문에 고생한 것을 미리 방지하려고 '도자기나라' 계약을 마감시키고 4월, 6월이면 헐겠다고 하는 것 같다"며 "주민들이 아직 살고 있는데 학교를 먼저 헐어버린다는 게 말이 되나"라며 쓴소리를 뱉었다. 가장 불안한 사람은 '도자기나라'를 운영하고 있는 양찬모 대표다. 그는 이제야 자리 잡고 주민들과 어울려 살고 있는데, 무작정 나가라고 하는 국방부가 야속하다. 양 대표는 "여기를 제2의 고향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들어왔다"면서 "이 폐교도 하나에서 열까지 손을 다 보고, 의자나 탁자까지 내손으로 다 짰다"며 "억장이 무너진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체험학습을 온 아이들이 먹을 고구마를 굽던 양 대표의 어머니 김옥련(71)씨도 "이런 데를 떠나면 아쉬워서 어떻게 하냐"면서 "아들한테 버티고 나가지 말라고 했다"며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훈련장 확장 반대' 다시 뭉치는 주민들
그러나 남아있는 주민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주병준 위원장은 "대추리도 250가구에서 시작해서 47가구가 끝까지 남지 않았냐. 우리는 아직 충분하다. 지금 있는 사람만이라도 뭉쳐도 된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협의매수에 응하지 않고 고향을 지키겠다는 서명을 받은 곳도 90여 가구가 된다. 직천초등학교 철거 등 국방부의 계획이 가속화되자, 그동안 지쳐있던 주민들도 다시 뭉치는 분위기다. 주민들은 마을 입구 컨테이너 박스에 차렸던 '대책위' 사무실을 직전초등학교 관사로 옮겼다. 작년 11월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주민들을 상대로 '평화교실'도 시작했다. 이 '평화교실'에 대추리주민대책위 신종원 이장을 비롯해 곳곳의 시민사회단체 실무자들을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했다. 관사에 마련된 대책위 사무실을 찾았을 때 '임을 위한 행진곡', '주한미군철거가' 등의 민중가요가 흘러 나왔다.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할 때마다 노래를 몰라 답답해 주민들이 나서서 배우자고 했단다. '오현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는 한 주민은 "처음에 시작할 때는 어색했는데 지금은 괜찮다"며 멋쩍게 웃었다. "여기서 떠난다는 것은 생을 포기하는 것"
젖소 30마리를 키우고 있는 심문기 '오현지킴이' 회장은 "여기서 떠난다는 것은 생을 포기하라는 것"이라며 "고향을 잃는 것도 있지만 내 생계와 직접 연관되어 있으니까 못 나가는 점도 있다"고 말했다. 오현리 마을이 산악지역이라 여름에도 온도가 비교적 낮아 가축들이 병이 잘 걸리지 않아, 이곳만큼 축산업을 하기 좋은 곳이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군사정권시절, 이곳 주민들은 대대손손 살던 마을에서 반항 한번 못하고 이주 당했다. 30년 동안 건축제한에 묶여 집 한번 제대로 고치지 못하고 탱크 소음도 참고 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제 완전히 고향을 떠나라’는 이야기다. 마을을 둘러보는 길에 20여대의 탱크행렬과 마주쳤다. 결국 취재차량이 2차선 도로 한가운데에서 탱크 사이에 갇히기도 했다. 육중한 탱크의 궤도가 움직일 때마다 땅을 흔드는 굉음은 일반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고도 남을 만했다. 사방을 둘러싼 군사훈련장이 점점 고향마을을 좁혀오는 공포감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그 공포감 속에서도 '고향마을'을 지키며 살겠다고 다시 팔을 걷어부친 오현리 주민들. 연대의 손길이 절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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