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통해 북한이 던진 대남 메시지는 그동안 막혀 있던 남북간 민간교류를 전폭적으로 풀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금강산.개성관광 재개 및 백두산 관광 시작을 비롯해 군사분계선 통행.체류 제한조치 해제, 개성공단 활성화,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 등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후퇴한 남북간 민간교류협력을 그 이전 시점으로 되돌리는 수준이다.
이러한 북한의 전격적인 조치도 '민간'에 국한되어 있다는 평가다. 결국 남북간 민간교류를 활성화 시키면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압박하는 모습이다.
금강산, 개성공단 장애물 걷어냈다.
지난 10일 평양을 방문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다섯 차례 체류연장 끝에 16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당면 현안에 대한 '긍정적'인 조치를 이끌어 내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와 5개항에 대해 합의를 도출했다.
현 회장은 이번 방북을 통해 금강산 관광과 개성관광 및 개성공단에 대해 장애물을 걷어냈다.
금강산 관광 중단의 발단이 됐던 '관광객 피격 사건'과 관련, 김 위원장으로부터 '신변안전보장', '재발방지 약속'을 얻었다.
현대와 아태와의 공동보도문에서 "김 위원장이 취한 특별조치에 따라 관광에 필요한 모든 편의와 안전이 철저히 보장될 것"이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또, 현정은 회장은 김 위원장이 면담에서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과 관련, "앞으로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북측은 사건 발생 직후 금강산지역을 총괄하는 명승지종합지도국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이미 '유감표명'을 했고 '진상조사'는 현대아산 측과 공동으로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남측이 제시한 관광 재개 조건이 대부분 성립됐지만 이같은 조건들이 '당국간 협의를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방식의 문제만 남은 셈이다.
하지만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2차 핵실험 이후 대북제재에 앞장 선 정부가 '금강산 관광 자금'을 문제 삼아 온 것은 금강산 관광 재개의 여전한 걸림돌이다.
현 회장 방북을 계기로 지난 13일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 씨가 석방되면서 개성관광 및 개성공단의 장애물도 없어졌다.
특히 12.1 조치에 따라 제한됐던 군사분계선 육로통행과 북측지역 체류를 원상회복하기로 하면서 개성관광의 문이 열리고 개성공단을 활성화하는 데 기본 토대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언급되지 않은 개성공단의 토지임대료, 임금 인상 등의 문제는 세 차례 진행되다 열리지 않고 있는 남북 당국간 실무협의를 통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北 '민간교류 풀 수 있는 조치는 다 하겠다'
'당국간 대화는 6.15, 10.4 이행 표명 있어야'
이번 현 회장의 방북을 통해 북한이 취한 조치는 민간교류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라는 분석이다. 다만 이러한 조치가 남북 당국간 대화로 이어지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북한은 민간기업의 사업자에게 해줄 수 있는 조치를 다 하겠다는 것이지만 6.15, 10.4 선언이 이행되지 않는다면 당국간 대화는 없다는 것"이라고 봤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간 적십자 회담이 열리더라도 이는 당국간 대화라기보다는 반관반민 형식이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성공단 실무접촉 수준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홍익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도 "북한이 기본적으로 바라보는 현재 구조는 당국간 대화 정상화가 아니다"라면서 "북한의 카드는 민간교류를 활성화하면서도 당국간 대화 없는 남북관계 개선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17일 현대와 아태가 마련한 공동보도문에서도 북한의 이같은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보도문은 서문에는 "현정은 회장의 청원을 모두 풀어줬다"면서 현대그룹이라는 민간기업의 요청을 받아들여 합의사항이 마련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말미에는 "쌍방의 역사적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따라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민족 공동의 번영을 위한 협력사업을 적극 발전시켜나갈 의지를 표명했다"면서 6.15, 10.4 선언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6.15, 10.4 선언에 해당하는 내용이면서도 이명박 정부가 거부하기 힘든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제안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기본적으로 북측이 남측에 공을 던졌다"면서 "남측에서 공을 어떻게 받느냐가 중요한데 정부로서는 간단하게 입장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북-현대 합의 받아들일까
현대와 북측의 합의사항에 대해 정부는 일단 '긍정적'이라면서도 민간차원의 합의이기 때문에 당국간 대화를 통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이같은 정부 입장을 전하면서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해서 정부는 남북적십자 회담이 빠른 시일 내에 개최되어 추석 이전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선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에서도 일단 '남북적십자' 회담은 제안할 수 있다는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현 회장 방북을 통해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꺼낼 가능성에 대해 정부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북한의 '추석 이산가족 상봉 제안' 기사를 보도한 바 있는 <민족21> 대표를 맡고 있는 정창현 교수는 청와대 당국자도 이 기사에 대해 관심을 보인 적이 있다면서 "현 회장이 올라가기 전에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타진해보자는 언질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문제'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현대와 북한이 합의한 대로 이산가족 상봉이 금강산에서 이뤄질 경우 금강산 관광 재개문제와 맞물리게 된다.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는 '관광객 피격사건' 뿐만 아니라, '핵개발 비용으로 전용가능한 현금'을 차단하겠다며 대북제재에 앞장서 온 이명박 정부로서는 '금강산 관광 대금' 역시 고민 거리다.
정부가 현정은 방북에 대해서 '일관되고 흔들리지 않는 대북정책'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보수층의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염두에 둘 부분은 현재 남북관계 해빙국면이 지난주 미국 여기자 석방 문제를 계기로 추진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이다.
정창현 교수는 "본격적으로 북.미대화가 이뤄지기 위한 구체적인 조건들이 만들어 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으로서 남북교류가 전면적으로 닫혀 있는 모습은 한.미동맹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 "이런 측면에서 미국이 요구했을 수도 있다"고 봤다.
즉, 이명박 정부가 이같은 북한의 조치에 대해 거부할 경우, 북한에게 '우리는 남북관계를 풀려고 하는데 남측이 안 받는다'는 명분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경고다.
* 2009.8.17 통일뉴스에 실린 기사.
관련글 -> 2009/08/14 - [한반도 일기] - 현정은 방북, 북한 전략에 말려든 MB